🌄“안개 속 파란 신화” — 시드니 블루마운틴에서 보낸 하루
🌄“안개 속 파란 신화” — 시드니 블루마운틴에서 보낸 하루
시드니에서 전철을 타고 두 시간 남짓,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점점 나무숲으로 바뀌고, 창밖엔 신기루처럼 안개가 깔린다. 바로 그곳이 있다 — 이름만큼이나 신비로운 곳, Blue Mountains.
처음 이곳을 가기로 결심했을 때만 해도 그냥 예쁜 산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Katoomba Station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내 오만한 기대는 가볍게 무너졌고, 곧 두 눈과 폐 속에 자연이 훅 들어왔다. 산과 협곡, 안개, 그리고 그 유명한 '파란 기운'까지.
🌄 Three Sisters 전설 속으로 들어가다
블루마운틴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Three Sisters다. ‘세 자매 바위’라고도 불리는 이 세 개의 돌기둥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아예 전설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존재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마법으로 돌이 되었다는 세 자매 이야기. 실제로 보면, 전설이 그냥 지어낸 얘기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Echo Point Lookout에서 이 바위를 마주하면 “왜 사람들이 블루마운틴을 호주의 보물이라 하는지” 이해된다. 안개 낀 아침엔 마치 동화 속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 같고, 해가 지는 오후엔 주황빛과 파란 안개가 뒤섞여 영화 한 장면 같다.
🚋 Scenic World, 중력도 무력한 체험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철도”라는 말이 괜한 과장이 아니었다. Scenic World 안에 있는 Scenic Railway는 52도 경사로를 거의 수직으로 떨어진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인데, 그 끝엔 놀랍게도 깊고 울창한 원시림이 기다린다. 그렇게 정신없이 내려온 후에는 Scenic Walkway라는 숲속 데크길이 기다린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반짝이고, 새 소리와 함께 걷다 보면 어느새 내가 도시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유리 바닥 곤돌라, Scenic Skyway다. 270미터 상공에서 협곡과 폭포, 그 모든 파란 풍경을 유영하듯 건너간다. 무서움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밀려오는 이상한 감정, 한 번은 느껴볼 만하다.
🛤 기차에서 시작된 여행의 낭만
Sydney Central Station에서 출발한 Blue Mountains Line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처음엔 창밖 풍경 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지만, 점점 시야에 유칼립투스 숲과 붉은 절벽이 나타날 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시골 마을 같은 Leura Station. 마을 전체가 한 편의 수채화 같다. 작은 카페와 골동품 상점들, 예쁜 정원과 느긋한 공기까지. 여기선 굳이 뭘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산책하면서 “아, 나 지금 호주 속 유럽 마을에 있구나” 하는 생각만으로도 만족스럽다.
🥾 걷고 또 걷고, 마음도 걸어가는 중
블루마운틴은 트레킹 천국이다. 걷는 걸 좋아한다면 반나절짜리 Wentworth Falls Track이나 Giant Stairway에 도전해 보자. 절벽을 따라 이어진 계단과 숲길, 중간중간 나타나는 폭포 소리에 마음이 정화된다.
특히 Wentworth Falls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폭포는 압도적이다. 떨어지는 물줄기와 부서지는 안개, 그리고 뒤로 펼쳐지는 푸른 산맥. ‘여기선 모든 고민이 작아 보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마무리는 Leura의 한적한 카페에서
하루를 꽉 채우고 돌아오는 길, 나는 Leura Mall 근처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 조용히 흘러나오는 재즈, 창밖으로 보이는 꽃과 나무. 이곳은 액티비티의 끝에 오는 평화로운 쉼표 같다.
🧭 여운을 안고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어느새 카메라 롤을 뒤적이며 그날 찍은 풍경들을 되새긴다. Blue Mountains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시간 여행 같았다. 도시의 빠른 호흡에서 벗어나 자연의 느린 리듬에 잠시 귀 기울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꼭 하룻밤 묵어가고 싶다. 별빛 아래의 블루마운틴은 또 어떤 모습일까.
그건, 다음 이야기로 남겨 두는 걸로.